연일 특보에 비보, 낭보가 날아든다.
청와대 게시판이 뜨겁다.
쏟아내고 표현하는것에 강한 국민들이 오죽 답답하고 화가 났으면 그랬을까싶어
이해가 되는 반면 어떠한 이유에서든 대한민국의 국민은 국외에서 보호받아야하고
그것이 생명과 직결되어 있고 협상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은 구명이 아닐까싶다.
아마도 수구 오합지졸 조중동이
일부든 전부든 비난의 목소리가 심심찮은 가운데
선뜻 반대의 목소리를 기사화 시키지 않은것은
살려야한다는 명제에 대해 동감하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니이미~
최남선과 이광수가 대한민국의 대표 문학가로 칭송받는 힘의 원천이 일본인것처럼
개신교단의 파워(이것도 어찌보면 그들이 편승해야하는 힘일까)가 그들을 마취시키고
있다해도 22명의 피랍자들은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와야 함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23명은 선교든 전도든 뜻이 있어 아프간에 갔을 것이고
결과를 떠나 '너'와 '나'같은 범인들이 쉽게 결정하지 못할 어려운 일임에도 인정하지만
그들의 선행이 참으로 무모했다는 것은 어쩔 수 가 없다.
우리는 배운 어른으로서 '책임'에 대해 간과한다.
그것도 선(善)이란 인과의 전제에서 책임은 자연스레 따라오거나 이해된다고 믿는다.
국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절대자의 사랑을 베풀러 단행했던 아프간행에서
어쩌면 예견된 비참한 상황을 맞게되었고 그것은 오로지 먼 고국의 국민과 국가의 몫으로
떨어졌다.
행동한 이들은 책임에 대해 무력했고 결국 행하는 자만 있고 마무리하는 자는 신 아니면 나머지가 되고 말았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 행동인가.
미처 믿음과 신념 이전에 책임에 대해 배우지 못한 그들은 그 순간만큼은 그저 어른일 뿐이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구명활동을 적극 지지하는 개인의 단편적인 비판의 목소리일뿐이다.
종교의 모순성까지 현학적으로 파고들고 싶지않다. 그럴말한 지식도 부족하다.
하지만 어느 피랍자의 처절한 육성을 들으며 잠시간 의문을 갖는다.
"우리가 왜 이곳에 있어야합니까?" 비록 텔레반에게 저지당하긴 했지만
그녀의 짧은 외침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한편에선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고
어느 한편에선 욕을하고
그리고 어느 한편에선 이유나 목적없이 그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그 너머인 아프간엔 내전의 산물 텔레반과
똑같은 신념으로 무슬림과 개신교가 대립하고 그것을 지켜보며 울고 있는 가족과
그들이 왜 그곳에 있어야 했는지 난감해하는 국민과 아프간정부, 대한민국 정부만이
지루한 목숨놀이를 하고 있다.
모두가 바라는 것은 원만한 해결이다.
P.S. 개신교도들의 종교적인 해석 사절
잠들기전 오분간의 '반성의 시간'을 제외하면 그런대로 Gooooood~
오분간,
오늘 무얼했으며, 앞으로 어쩌지?
뭐 이런 자성의 시간을 갖는데
의도한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어두워지면 맑아지는 정신이
유체이탈전에 행하는 의식이다.
요때 딱 한번 비관적이 된다.
그 외에는 뭐.....언제나 긍정적 마인드!
얼마전엔 Prison Break 2 를 하루만에 완청...
시즌1을 건너뛰고 봐서 그런지 시즌2의 아쉬움도 느끼지못한채
완전 몰입해서 쉬지않고 시청.
눈 빠지는줄 알았다.
그나저나 석호필한테 왜 꽃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시즌1을 안봐서 그렇다고 하던데...)
시즌3로 이어지는 질기고도 질긴 운명의 장난에선 좀 허탈하기도 했지만(너무 작위적이야~)
일단,
주변인물 완벽조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전과 사건전개는 타의 추종불허
지금껏 봤던 미드중에 가장 긴장감 넘치는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무엇보다 PB의 최고 캐릭터는 '티백'이다.
숀펜과 안소니 홉킨스를 믹스시킨 시니컬한 인상
질긴 생명력과 가장 뚜렷한 속물근성, 잔인성 이 모든것을 갖고도 동정심이 발동되는
흔치않은 캐릭터다.
조만간 동영상 강의 끝내고 시즌1도 건드려줘야겠다. 으흐흐~
신나게 잠자고, 내키면 하루 반납하고 소풍도가고
그럴 수 있을거라 기대했는데
백수가 되고나니 돈 걱정에 시간 걱정
오히려 심적 과로가 더해진다.
누구말처럼 그래도 목표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꼭! 성공해야지~!!! 아자~!!!
봄꽃 만개하고 흙내음, 물기어린 새싹내음 생생한데
늘 달의 정기만 받고 살다보니 시간이 가는지도
봄이 봄인지도 모른채 있다.
지랄맞은 폭우와 우박속에서도 봄은 온다.
'TV, 책을 말하다'는 꼭 시청하는 프로그램이다.
너무 방대해 선택하기 힘든 책고르기에서
'즐거운책읽기'의 해법을 제공하는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어제는(4.10)는 처세에 관한 책을 열거했다.
상술로 도배된 달콤한 말잔치.
누가 니 치즈 훔쳤냐?
아침的 인간.
시골아빠 서울아빠.
이런류~ 뷁!!!!!!!!!!!!!!!!
비아냥대면서도 읽게되는건.
뭔가 되게 불안하다는 것이다.
빽빽한 지하철 시루에 엉덩이 들이밀며 기어코 지하철에 올라타는
끈질긴 투지와 생명력으로 시멘트 바닥에 뿌리박고 잘 살고 있나에 관한 명상의 시간쯤.
학원시간이 미친 퇴근전쟁시간과 딱맞아 늘 강남역은 지옥이다.
서구화 현대화, 그리고 문명화 도시화, 세계화 이딴 좋은말들에 가까워질수록
인간은 선인장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모래사막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는다.
가시로 무장하고 물없이 수개월을 버티며 그래도 푸르고 단단하다.
독한 식물.
선인장의 지적 양식인 처세서는 이런 공허함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누구나 아는 얘기를 얼마나 작가스럽게 풀어놓는냐가 관건이며
마치 여행자들을 위한 tip처럼 현대인을 위한 심오한 tip를 제공하는냥
보무도 당당하게 진열대에서 자태를 뽐낸다.
인간미가 결여되어 있어서 이런책은 읽어도 찝찝하다.
패널들은 하나같이 '요미우미'나 '디지로그'를 분석하며
그 싼티에 질색하지만 독서란 명제로 좋게 포장하고 나선다.
당췌 읽어달라는 것이냐?
읽긴 읽되 원망하지 말란 것이냐?
잠시 헤깔리는 토론시간이였다.
지지난주는 김언수 작가의 '캐비닛'이란 흥미로운 책을 소개받고
틈틈이 읽고 있는 중.
작가의 상상력이 참 독특하다.
약간의 허풍과 끊임없이 추락하는 자아,
요동치는 감성이 버무려진 비빔밥같은 이야기.
특히 타임스키퍼가 인상적이다.
잠적이 연중행사인 내게 딱 들어맞는 심토머증후군이다.
근래 내내 책읽기 성공. 으흐흐~
난 오늘도 달빛 정기를 빨아먹으며 학원으로 go go~
<이성>
나는 이 세상에서 소설만이 완벽하다고 본다.
진실은 뉴스나 신문, 그리고 잘난 역사책이 아니다.
짐짓 남의 나라 말로 역사를 메울때 백성들은 '얄리얄리얄라셩'하며 노래했던
그것이 진실이다.
진실은 저급하고 통속적이고 허구적인 소설속에서 그 찬란함을 단련한다.
모처럼 완벽에 가까운 작품을 만났다.
이 한권으로 인해 일본 소설은 '별로'라는 꼬리표가 꼬리를 감췄다.
'상실의 시대' 이후 참으로 긴 공백이였다.
에쿠니 가오리의 동명의 도쿄타워가 아니니 연애라는 필터로 세상을 관찰할 생각은 애초부터 접어야한다.
필명. 릴리 프랭키
음악, 그림, 글 다방면에 두각을 나타낸 그는 과연 천재일까.
천재는 아니더라도 분명 부러운 인물이다.
작가는 가족의 의미를 어머니라는 절대적인 존재로 대변하며
광범위한 사랑과 믿음, 그리움을 위트넘치는 문장력으로 써내려간다.
장소와 사건, 아무일없는 일상과 너무 많은 일들이 공존하는 현실을 한권으로 압축해
성장, 퇴보하며 종국에는 내가 아닌 어머니 즉 가족을 말한다.
과도기의 도시, 변화에 열외되는 향수, 그속에서 변질되지 않은 사랑.
분명한 역사는 성장의 산물이며 향수는 추억이 되고 사랑은 물질의 반대개념화되지만
진실은 바로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나와 어머니, 때때로 아버지' 이다.
<감성>
이 이야기는 작가의 경험담이다.(스포일러성)
그에게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의 죽음부터 거슬러
길고 긴 시간 어머니와 마사야(작가)의 우정은 시간과 진실의 결합에서
완벽한 팀웍을 보인다.
살을 뚫고 낳았어도 이미 인간의 형상으로 다른 심장이 제각기 뛰고 있는 분리된 인간의
끈끈한 인연은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게, 외로워도 외롭지 않게
당신을 태워 자식을 지켜준 엄니에게 마지막으로 '고맙다'고 말하며
한 인간으로써 당신의 고통과 인내, 사랑에 대한 우정은 갚을 수 없는 감사함과 고마움이다.
새벽3시.
목에 돌덩이가 걸려서 캑캑대고 있자니 눈물이 쏟아진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서도 누가 울렸는가에 대한 대답에 그냥 '내가 그랬다'였다.
가슴 무너지는 슬픔이 내가 자초한 것이라고...
그러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버스에서 막 슬퍼지려고 할때 책을 덮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였음 진심으로 누가 그랬냐고 물어올뻔 했다.
그때부터 빨갛게 부어있던 콧망울, 비도 오고, 달거리에 의한 호르몬 과다분비로 인해
민망할 정도로 눈물을 온몸에 흠뻑 머금고 있었다.
살짝 옆으로 옮겨놓기만해도 물이 주루룩 흘러버릴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그리곤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어렸을적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던 일, 우주인의 습격보다, 지구의 종말보다
더 무서웠던 어머니의 죽음. (대략)
그렇게 작가의 독백은 이어졌다. 하염없이 울었다.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얻어본 사람들은 동감할것이다.
비교될 수 없지만 간혹 나의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그런 소중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단순히 '엄니가 이렇게 빨리 죽어버리면 난 좀 곤란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피와 눈물을 토하며 '제발 죽지마'라고 말하는 아들의 한이였을것이다.
회색가루가와 몇개의 뼛조각이 되어 나온 엄니.
뼛조각하나를 삼켰다.
내 몸에 엄니를 넣어두고 싶었다.
모 다큐멘터리에서 죽은 남편의 뼛가루를 티스푼으로 떠먹는 한 여인을 보았다.
무슨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행위인가 했지만
그러므로써 죽은 남편과 일체되는것 같다던 할머니의 말에
'그래...그럴수도 있겠다' 했다.
몇해전 그냥 이쁘다 이쁘다 했던 고양이가 죽었을때 비로소 알게되었다.
내가 그녀석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를 그리고 그 녀석에게 이쁘다 이쁘다 말고는 별로 해준게 없었다는 사실에 다 내탓인것만 같았던 그리움의 시간들을
생명을 낳고, 키우고, 사랑하다보면 더 잘해주지 못한 것들을 대한 후회가 찾아온다.
그런것들로 우리는 표현의 중요성을 깨닫게된다.
아마도 그 할머니도 남편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그 뼈를 씹었을 것이다.
릴리 프랭키가 어머니의 뼛조각을 몸속에 삼켰듯이...
코쿠라,치쿠호,도쿄에서 살며
엄니의 짱아찌를 그리워하던 모든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제대로된 감동은 영화장면처럼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리곤 엄니가 없는 현실과 마주하며 내가 느끼는 심정 또한
마사야(릴리프랭키)의 그것과 같았다.
아직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금새 우리 부모님을 데려간다든지
효도한번 못하고 그대로 보내야한다면 절대 하늘을 용서치 않겠다는
괜한 으름장도 놓아봤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감춘것에 대해 반성했다.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효도하려 하지만 이미 부모는 세상에 없다.
자존(自存) 과 봉사 (奉仕)
세상에 발딛고 살 동안 타인을 위해 베풀고 희생하라
그럼에 난 절대 종교를 갖지 않을것이며
다만 가르침과 진리에 관한 성찰은
신이 아닌 인간의 경험에서 비롯된 산물로
해답을 찾아갈 것이다.
또한, 한통의 전화든 봉사활동이든
살아 있는 동안은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한다.
땀흘리고 마음을 나누면서 삶과 죄의 불가분의 관계속에서
속죄의 양심을 지켜가리라.
스스로에게 신화가 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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넑놓고 있을 여유가 없다.. 세상엔 할일이 많다..
from fun!! & ronnie+2007/05/14 10:53세상엔 할일이 많다.(상대적 여유는 부족하다.)배울 것, 배풀 것, 하고픈 것, 해야할 것..세상엔 할 일이 매우 많다.매일을 의미없이 보내기엔 내 젊음과 인생이 너무 짧다.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끼고, 활용하고, (남에게)베풀기 위해서는 잠시도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마운 채찍질 들..(감사합니다.)나태해지려하는 나에게.. 고마운 채찍질을 해주시는 여러분이 있어 감사하고 한편으로 다행이다.언제나.. 한결같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0..
급한일도 급할게 없고
작은것들에 애정이 솟는다.
바람이 차다.
불과 일주일전은 봄날처럼 따스했는데
이젠 겨울날처럼 쌀쌀하다.
기분이 그래서인지 바람도 예사롭지않다.
그간 '플라나리아'를 접고 '인생수업'을 펼쳐들다.
오며가며 만독하면 그것이 바로 시계고 시간이다.
이렇게 지식과 감성의 브릿지는
아무도 모르게 비밀교서를 받아든 작가와 나의 첩보전이다.
주변인을 감쪽같이 속이고 감동을 고스란히 독식한다.
케케묵은 공기를 환기시키려고 가슴을 열고 심호흡하자
내 앞에 2007년이 뚝 떨어졌다.
거저주는건 아니라면서 용기를 주고간다.
운명에 맡기면서 동시에 운명의 선두에 서겠다는 각오를 한다.
벌써 스물아홉이 아닌가.
책도 좋고, 공부도 좋다.
바람은 차지만 가슴은 여유롭고 머릿속은 부산하다.
수필이다.
수필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작품은 괜찮았다.
무엇보다 이성적인 관찰법에 작가의 감수성이 더해져 사소한 사물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등장한다.
수필은 관조도 필요하지만
내 생각과 그의 생각을 공유한다는 관점으로 다가서는게 필요한것 같다.
내 나이 서른 하나 - 야마모토 후미오 ★ ★ ☆
책 이런식으로 쓰면 죽는다!!
31살이란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관련없는 이들의 에피소드가 31편이나 등장한다.
작가의 어설픈 유머가 통하는 순간이다.
31살에 끼워맞추기 위해 억지스런 31편을 짜내느라 무던히 애를 쓴 흔적이 역력했다. 부상으로 베스킨라빈스 떠리원 아이스크림을....
290페이지의 분량이니 한편당 5장을 넘기거나 못넘기거나
이정도의 인물소개로 대체 무슨 31살의 삶의 의미를 되짚을 수 있단말인가
다소 공감되는 몇몇개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억지스럽다.
그리고 일본소설을 보면서 느끼는거지만
니들은 대체 뭘 먹고사니?
아몬드 샐러드에 와인, 양송이향이 가득한 안심스테이크요리?
국적불명의 식탁.
상상은 그만두고 현실에 입각해서 좀 더 리얼하게 그릴 순 없나?
점점 일본 소설에 대한 실망이 늘어간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 오가와 요코 ★ ★ ★
일본 서점 베스트셀러에다 독자평이 좋아서 생각없이 질렀는데 그냥 평이했다.
생각보다 여운도 길지 못했고...
읽는 순간은 감춰진 진실에 관한 추리소설처럼 다가왔다.
80분간의 기억력을 극복하고 박사와 파출부, 그리고 그녀의 아들간에
우정이 싹트게되고 그로인해 좌절하게 되는 드라마에 기승전결이 있길 바랬고
박사의 사고전 모습이 언급이 되었다면 사실적이지 않았을까싶고
내연의 관계로 사건을 전환시키는 형수의 역할이 좀 더 부각되었다면
정상적인 관찰자인 파출부의 감정이입과 독자몰입을 배가시킬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뻔한 내용이다라는 이유로 뉴스를 보지않은지 한참됐습니다.
네이버로 뉴스 헤드라인만 쫓다가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제대로 읽어보게 됩니다.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거 조.중.동의 되먹지 않은 편협한 논조의 글만 보니 기자들이 한심하기 짝이없더군요. 의식이 없는걸까. 아니면 기자라는 신분이되면 정의성이 퇴색하는걸까.
아니, 정치와 자본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기자들의 한계를 탄식해야할까.
어쩔 수 없는 월급쟁이일뿐이다.
기사에 혼을 담아, 취재하고 고발하는 기자들은 이미 월급봉투속에 묻혀서
사주가 원하는 글, 대기업에 순응하는 글만 복사해내며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는 획일적인 여론몰이에 능한 고학력의 꼭두각시라는
아주 무서운 편견속에 자리했습니다.
시사저널은 기울어진 저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그나마 노력하는 잡지로 알고있습니다. 작지만 탄탄한...
언론도 기업화되는 현실속에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시사저널이
자본이란 새로운 권력앞에 굴복당한다면 필자의 편견은 더 확고해질 것입니다.
시사저널 진품 예약구매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뜻이 같은 이들의 참여가 절실합니다.
보드탄다, 공연본다하며 낭비한 돈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작지만 그들에게 힘을 보탭니다. 단지 기자들의 복귀만이 아닌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
시사저널 전편집장 서명숙님의 글입니다.
지극히 사적인 글이지만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반년의 투쟁속에서 정의구현의 선봉인 기자들도 노동자라는 불변적 현실.
어디서나 존재하는 돈의 힘.
군사독재에서 자본으로 옮겨간 권력은 국민들을 마취시키고 기자들을 사지로 내모는군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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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김훈 선배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어젯밤 김훈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칼의 노래> 작가로 더 알려져 있지만 시사저널 후배들에게는 그저 편집국장을 지낸 선배이지요). “<짝퉁 시사저널>이 나왔다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묻더군요. 컴퓨터를 배격하는 아날로그적인 양반이라서 <오마이뉴스>에 실린 제 글을 보지는 않았는데 어떤 매체의 기자가 전화를 해서 알았다구요. 오피스텔에 칩거해 글만 쓰느라고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면서, 왜 미리 얘기해 주지 않았냐고 서운해 하시더군요.
오늘 일산 김선배 집 앞 커피숍에서 <시사저널>에서 한철을 보냈던 세 사람이 만났습니다. 낮 12시에 만나서 오후5시30분이 되어서야 헤어졌습니다. 긴긴 시간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술도 마셨지요. 아, 저는 물론 술은 아니 마셨습니다. 1월1일에 술을 끊기로 결심했으니까요(타이밍 한번 정말 잘못 잡았습니다). 김선배는 아직 <시사저널>899호는 받아보지 못했더군요. 오늘 집에 가면 와 있을 거라구요. 그러나 주변의 전언으로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의 ‘퇴기(퇴직한 기자의 줄임말)’는 여기 일일이 옮겨적을 수 없을 만큼 긴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옛날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새벽까지 마감하고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해장하고 아침해를 보면서 퇴근했던 일, ‘청와대 밀가루 북송사건’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고소를 당해 검찰 포토라인에 섰던 일, 한 주 걸러 한번씩 고소장을 받아들던 일, 그보다 더 자주 언론중재위에 불려갔던 일, 걸핏 하면 사표 쓰고 칩거한 김선배의 뒷감당을 하느라 후배들이 애먹었던 일.
그러다가 김선배의 눈에 물기가 비치더군요. “내 청춘을 바친 잡지인데, 후배들이 그 어려운 시기도 넘기면서 지켜온 제호인데‘’‘” 말을 채 잇지 못하더군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면서 너무 울어서 더는 울고 싶지 않았던지라 퉁명스레 맞받아쳤지요. “청춘은 무슨 청춘, 선배는 이미 한물 간 나이였어요. 30대인 우리가 청춘의 절정이었죠.” 김선배는 계속 우기더군요. 자기도 청춘이었다구요. 나이는 몰라도 정신적으로 청년이었던 것만큼은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김선배는 말하더군요. 편집국장하면서 굉장히 편했다구요. 실무는 몽땅 후배들에게 맡기고 자기는 편집국을 공격하는 외적만 방어했노라고.
‘외적만’이라고 김선배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사실 외적의 출몰이 좀 잦았던가요. 그때만 해도 우리 사회에 권위주의적인 잔재가 남아 있던지라 청와대, 국정원(당시는 안기부), 검찰 에서부터 종교집단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문제를 까발린 기사에 대해 가만놔두지 않겠다고 으름장 놓는 곳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신문 방송이라는 거대한 보호막도 없는 자그마한 독립매체가 어지간히도 까불었던 셈입니다.
#“청춘을 바치고 뼈를 갈았는데...”#
술기운 탓인지 김선배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나도 시사저널에 정신적인 지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청춘을 바치고 뼈를 갈았는데....당신들도 다 마찬가지고.” 심각해지기 싫어서 ‘뼈는 몰라도 연필이랑 지우개는 많이 갈아바쳤죠’라고 짐짓 심드렁하게 대꾸했습니다(원고지에 연필로 데스크 컬럼을 써내려갔던 김훈 선배는 책상 주변에 지우개똥을 어지간히도 흘려놓곤 했었으니까요).
‘짝퉁 시사저널’로 화제가 옮겨가자 김선배는 비통해했습니다. 수많은 정기구독자를 생각하면 결호를 내서도 안되지만, ‘짝퉁’도 말이 안되는 일이라구요. 생각만 해도 바늘로 콕콕 쑤시는 것처럼 아프다구요. 시사저널은 단순한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적 재산인데, 그런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푸르른 청춘과 뼈를 갈아바쳤는데, 그런 매체가 한번 세상에 나와 착근하려면 십년 이십년도 더 걸릴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인가, 라구요. 이건 그곳에 몸담았던 사람들에 대한 능욕이라구요.
옆에 있던 또다른 퇴기가 말했지요. 우리가 이럴진대 거기 몸담은 후배들은 짝퉁 시사저널을 보면서 얼마나 괴롭고 모멸스러웠겠냐구요. 젊은 후배들 중에는 잡지 만드는 게 너무 신나고 좋아서 아예 집에도 안 들어가는 놈들도 있다구요. 김선배가 되묻더군요. "야, 정말 그러냐. 고놈들, 정말 이쁘다. 언제 술이나 사줘야겠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더니 급기야 김선배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카페에 들어설 때 “소설가 김훈 선생님 아니냐?”고 반색하며 맞았던 여주인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구요(다 늙은, 또 늙어가는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울다 웃다 하는 희한한 풍경을 어찌 받아들일지 참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김선배는 시사저널의 오늘을 있게 만든 건 소유주도, 전현직 기자도 아닌 독자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독자들에게 지금의 사태는 너무도 면목없고 미안한 일이고(잘잘못이 어디에 있던 간에), 하루 빨리 진품 시사저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게 오늘 술자리의 결론이었지요. 그러니 사태 해결을 위해 선배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해보자고요.
오늘날 시사저널 사태가 파행으로 치달은 원인이 편집권은 사주나 발행인 개인의 것이 아닌 편집국 구성원의 이성의 산물이라고 믿으면서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켜온 <시사저널>의 오랜 전통을 지켜나가려는 후배들과 새로운 발행인과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그런 전통을 만들어낸 선배들 역시 원인 제공자 중 하나이니까요.
마음만큼이나 추운 겨울바람이 부는 허허벌판 일산에서 ‘퇴기’ 출신 원고 노동자-한명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나머지 둘은 별볼일없는 프리랜서였지만요-셋은 ‘주민등록주소지’인 각자의 집으로 총총히 돌아왔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친정어머니가 말하시더군요. “야, 군대서 옷 왔다.” “어머, 그래요?” “근데, 뭐 학사경고장인가 하는 것도 왔더라.” ‘군대에 온 옷’은 1월2일 논산훈련소에 훈련병으로 입소한 큰애가 집으로 부쳐온 사제 옷이고, ‘학사경고장’은 큰애가 다니는 대학에서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아, 큰애가 한창 엄마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던 시기에 김선배가 얘기했듯이 ‘뼈를 갈아’ 잡지를 만드느라 아이를 방치했고, 심지어는 ‘악마의 빚독촉 같은 마감’에 시달리면서 다른 매체보다 더 좋은 기사를 쓰겠다는 욕심 때문에 주중에는 시댁에 맡기고 주말에만 데리고 왔었지요. 안팎으로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 핑계 저 핑계로 술을 마셨겠지요. 시사저널 사태 때문에 한 잔, 아들 때문에 한 잔!
그러나 금연하면서 깨달은 진실은 담배가 풀리지 않는 원고를 대신 써주지는 않는다는 것. 지금 눈앞에 놓인 문제들 역시 한잔 술이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요. 또렷하고 맑은 정신으로,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작정입니다. 내 청춘을 실어보낸 <시사저널>이 지금의 위기를 멋지게 극복하고, 내 마음의 빚인 큰아이가 제 갈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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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 On Up - Heritage
Fan - Epick H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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